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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분지에 형성된 마을로서 신라 때부터 숨어 살게 된 사람들, 전란을 피해온 사람들, 화전민들이 정착함으로써 커지게 되었다.

    흔히들 이곳을 '오강지두 팔령지하(五江之頭八嶺之下)'라 일컫는데 형산강, 오십천, 낙동강, 금호강, 곡강으로 흘러 드는 물이 주위의 분수령에서 시발되며, 오전령, 통점령, 천장령, 증암령, 천령, 생란령, 만전령이 있어 이 준령을 넘어야 타지로 통하는 오지인지라 예부터 피난지처로 '一은고래요, 二는 두마'라 불리던 곳이다.

    옥같이 맑은 냇물이 흘러 오십천의 상류 한 지류가 되니 세칭하기를 옥계라 했으며,고래,고내 라고도 부르던 상옥은 높은 곳에서 냇물이 흐른다는 뜻(高川)으로 풀이되기도 하고,지형이 마치 거대한 고래로 각을 떠낸 듯한 행주형국인지라 이에 연유하여 고래라 부른다 한다.

    한편으로는 동편 산의 모습 또한 암수 두 마리의 고래를 닮았다는 데 연유한다고도 전한다.

    1910년 청하군의 죽북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영일군 죽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34년에 죽장면에 귀속되어 오늘에 이른다.

    윗 고래인 1리에는 거릿마을(거렁미), 솔안마을(松內), 못둑모치, 무쇳골(수철골)이 있고 아랫고래(2리)에는 상윗골(사잇골,샛모치), 배빗재마을, 당모치(당평), 먹방골 넘은절골, 장터,쑥밭과 같은 마을이 있다.

    신라말기 서라벌에서 란을 피해 들어온 고관대작들의 고급주택이 즐비하였으며 한때 1,000여호가 넘게 살았다 전한다.

    먹방골은 그 당시부터 먹을 만드는 고을로 소문이 났고,무쇳골은 병기와 농구를 만드는 마을로 군사상 중요한 지역이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초기 입주하여 마을을 개척한 성씨는 조씨, 오씨, 권씨, 최씨, 한씨라 전한다. 성지 비결(成知 秘訣)에 이재칠전중(利在七田中)이라 했고 정감록 비결에도 구인종 칠전중(求人鐘 七田中)이라 했다 하여 칠전 (선전, 만전, 평중전, 마두전, 초전, 대중전, 각전(火田)의 중앙에 위치한 이 마을을 피난처로나 군사기지로 이용하였다 한다.

    산남의진(山南義陣)의 진지로, 6.25때는 인민군의 주력부대가 머물던 요새지로 쓰였으며, 위대한 강대근 의사(산남의진 가담)의 출생지이다.

    송내동 느티나무 (300여 년생, 가슴둘레 3.3m)를 남당으로, 당평마을 이팝나무 (250여 년생, 가슴둘레 3.1m)를 여당으로 하여 삼짇날 산신과 동신에 제사를 지낸다.